친구의 애인이 싫은 이유
- lkh950203
- 2022년 4월 5일
- 3분 분량
디즈니 영화 중에 <마법에 걸린 사랑>이 있다. 영화는 애니메이션 세계에 살던 공주가 왕자와의 결혼식 날에 마녀의 꾐에 빠져 실제 인간 세계로 떨어지면서 시작된다. 공주는 마침 거기서 만난 남자와 사랑에 빠지는데, 나름 로맨틱했다. 충격의 장면은 마지막에 나온다. 공주에게는 원래 결혼하기로 했던 왕자가 있고, 사실 남자에게도 만나던 여자가 있었다. 영화가 끝나면서 공주와 남자가 커플이 되자 갑자기 왕자와 여자가 한눈에 반해 서로 사랑에 빠져서는, 나만 빼고 다들 커플이 되어 즐거워하면서 영화가 끝난다. 급작스러운 관계 전개에 나는 당황했다.
생각해보면 그리 충격받을 만한 전개는 아니다. 로맨스를 다루는 많은 영화와 드라마에는 남과 여주인공이 있고 서브남주와 서브여주가 있으니 말이다. 그러니 어떤 작품에서는 서브남녀를 사랑에 빠지게 하는 플롯이 존재할 수 있다. 다만 <마법에 걸린 사랑>에서는 관계를 쌓는 과정을 과감하게 생략해 버린 탓에 관객을 당황시켰을 뿐이다.
나의 로맨스에 대해 이야기하자면, 나는 태어날 때 여성으로 지정받았고 내 애인도 마찬가지다. 연애란 게 어느 정도 남들 하는 대로 하게 되는 데 그래도 나는 같은 성별끼리 연애하면 어딘가 특별할 거라고 생각했다. 이성애 연애각본은 따르지 말아야지, 했다. 연애각본이란 남들 연애하는 대로 하게 되는, 연애하면서 ‘이렇게 해야할 것 같은’ 그것을 말한다. 우리는 자유로이 연애하는 것 같지만 연애할 때 나도 모르게 연애의 이미지를 각본 삼아 따르게 된다. 성별에 따라 할일이 주어지는 이성애 연애각본 아래의 불평등한 연애 이런건 남 얘기라고 생각했다. (우리는 진짜로 ‘성평등’했으니까.) 하지만 연애라는 건 알고보니 고도로 정교하고 복잡한 각본을 가진 연극이었다. 연극의 주연은 많은 경우 남녀가 맡지만, 꼭 그런 것도 아니었다. 연극엔 주연만 있지도 않다. 조연도 있다.
이 글을 쓰게 만든 것은 두 개의 연애 사건이다. 얼마 전 절친한 친구 윤에게 애인이 생겼다. 사실 생겨 버렸다고 말하고 싶을 정도로 나에겐 벼락같은 일이었다. 주말에 윤과 윤의 애인 찬이 우리집에 놀러왔다. 서로를 위해 요리를 하고 와인을 마시고 설거지를 했고, 다음날 아침엔 유리창으로 들어오는 해를 받으며 같이 전날 밤의 흔적을 정리했다. 이렇게 함께하는 날이 계속되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찬은 나와 잘 맞았다. 윤의 애인으로가 아니라, 친구로 친해지고 싶었다. 하지만 함께인 것이 편하지 않았다. 셋이 있을 때면 소외감이 들었고 나만 밖으로 밀쳐진 느낌이었다. 윤의 눈에는 애인만 비칠 거라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자꾸만 분한 마음이 들어서 일부러 다른 생각을 했다. 아까 말했던 또 다른 연애 사건이다.
내가 연애를 막 시작했을 때, 나 역시 내 애인을 윤에게 소개시켜 준 적이 있었다. 그때 나는 연애에 취해 있었다. 우리가 조금은 극적인 방식으로 연애를 시작하기도 했고 동성연애를 한다는 생각에 내가 세상에서 제일 특별한 연애를 하고 있다고 믿었다. 정말 ‘영화 속의 주인공이 된 것 같은’ 착각이 들었다. 그래서 첫 만남에 실수를 했다. 서로를 소개시키는 자리에서 잠시 애인과 둘만의 시간에 빠져버린 것이다. 애인과 나 서로에 대한 이야기를 하고 있었고 눈이 마주치는 순간… 세상엔 둘만 있는 것 같았다... 찰나의 눈 마주치는 순간이 영원처럼 느껴졌다. 문제는, 첫째로 그 자리에 우리 둘만 있지 않았고 둘째로 눈맞춤의 시간이 진짜로 마치 영원처럼 길어서, 윤이 화가 나 버렸다. 그렇게 일 년 넘게 지내다가, 그때의 내가 연애 각본에 따라 움직이고 있었음을 윤의 연애를 보면서 깨우쳤다. 우연적으로 만나 강렬한 끌림을 느끼게 되는 것, 서로만으로 충분한 느낌, 이 관계는 다른 관계와 다르다고 자꾸 생각하게 되는 것들이 다 연애각본이었구나. 낭만적인 그 느낌이 각본의 지문이었겠구나.
연애 각본에 충실하면 나와 애인은 주인공이 되고 다른 사람들은 조연이 된다. 윤도 좋고 찬도 좋았지만 내가 계속해서 느낀 슬픈 감정은 조연으로 밀려났다는 느낌 때문이었다. 윤과 찬이 일부러 나를 소외시키지는 않았을 것이다. 그랬다 하더라도 서로를 너무 사랑해 다른 것은 안 보였기 때문이지 의도적인 것은 아니었을 것이다. (사실 그것도 연애각본이라 생각한다.) ‘조연으로 밀려난 것 같은’ 속상함과 소외감을 내가 느꼈다는 것이 중요하다. 사람들은 연애는 당사자가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연애는 연애각본을 수행하는 것이다’라는 말도 연애 당사자에게 초점을 맞춘다. 하지만 연애 각본이 가진 힘은 연애 당사자의 주위 사람에게도 발휘된다. 둘만 있을 시간을 자연스럽게 만들어 준다던지, 애인으로서 할 수 있는 칭찬에 당황스러운 마음으로 공감해 준다던지, 애인 사이면 그럴 수 있지,라고 생각하는 것들은 모두 노력의 결과다. 그래야 한다고 알고 있기 때문에 자연스러운 것처럼 보일 뿐이다. 윤과 찬 커플과 있을 때 슬펐던 이유는 내 스스로 나의 위치를 자연스럽게 조연으로 옮겼기 때문이었다. 속상함과 소외감도 그래서 생겨난 감정이었을 것이다.
글을 쓰면서 하나 더 떠올랐는데, 사실 나는 이 비슷한 감정을 다른 커플에게서도 느낀 적 있다. 다른 친구 커플인 영과 한성과 함께 제주도 여행을 갔을 때, 같이 있어서 좋았지만 어떤 때에는 우리 셋이 아니라 그들과 내가 있는 것처럼 느꼈다. 이렇게 쓰고 보니 나는 그냥 질투가 많은 사람인 것 같기도 한데, 그래서 이 글을 읽는 누군가가 제발 내 글에 동의해주었으면 좋겠다. 어쨌건 ‘원래 다 그런 것 같은’ 연애 각본을 의식적으로 피하는 것은 많이 피곤한 일이고 어차피 완벽히 벗어날 수도 없을 거다. 그럼에도 나는 연애 각본에서 조금은 벗어난 연애를 시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함께 있으면 주연도 조연도 없는 모임을 만드는 것, 누가 소외되고 있는지 살피는 것, 누가 왜 말이 없는지 알아채는 것이다. 애인과는 사랑을 나누고 친구와는 우정을 나누는 것이 아니라, 각각의 사람을 서로 다른 모양으로 모두 다 사랑하는 모임에 속하고 싶다. 사랑은 나눌수록 커진다는 말을 진심으로 믿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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