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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과 제목과 눈물짓는 일

  • lkh950203
  • 2022년 4월 3일
  • 3분 분량

예전에 글을 하나 완성하고 울었다. 내 글이 퍽 감동스러워서였으면 좋았겠지만 사람의 이름을 고치고 나서였다. 내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일기를 포함한 모든 글은 픽션이라고. 아무리 사실적인 수필이건 기사문이건 심지어 일기조차도 독자를 의식한 꾸밈이 있다고 배웠던 것 같다. 사실이어도 곤란한 일이지만 픽션인 글에 실제 주변 사람들의 이름을 그대로 갖다 쓸 수는 없어서 글을 쓸 때마다 이름을 새로 짓는데, 문제는 내가 이름짓는 데 정말 소질이 없다는 것이다. 어느 정도냐 하면 이름 짓는 걸로 고심하다가 끝내 시작을 포기한 글이 정말 많다. 그래서 일단 실명을 넣어 글을 쓴 후에 탈고하고 나서 새로운 이름을 붙인다. 글쓰기 과정에서 내가 가장 싫어하는 일이지만 현실적으로 제일 필요한 일이 되었다.


아무튼 그날은 이름짓기의 수고로움을 던 날이기도 했다. 글에 등장하는 분에게 혹시 갖고싶은 이름은 없었느냐고 물어 직접 이름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의 ‘공식적인’ 이름을 글에서 하나하나 찾아내어 그가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다시 적어넣는데 눈물이 났다. 불리고 싶은 이름으로 불리는 것이 짜증날 정도로 어려운 것 같아서. 이름에 불만을 느껴보지 않은 나는 주변에서 이름의 디스포리아를 겪는 사람들을 보면 먹먹하고 미안했다. 어떤 마음인지 알 수도, 느껴지지도 않아 머릿속과 감정이 새하얘지는 것이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그런데 그날은 아주 잠깐 힘겨움을 느꼈다. 글에서나마 새로운 이름으로 살 게 하여서 덜 미안하고 싶었다.

이름 때문에 구글 드라이브에 버려둔 글이 하나 있다. 실연과 이별에 관한 글이다. 나는 글쓰기를 시작하면 최대한 빠른 시간 내에 초고를 끝내고 탈고에 시간을 들이는데, 몇 주째 초고 쓰기를 실패한 글이다. 평소대로였으면 실명을 글에 적고 나중에 고칠텐데 잠깐이라도 그 이름을 아이패드 화면에서 보는 것조차 할 수 없었다. 그러면 이별이 감당할 수 없는 큰 현실로 다가올 것 같았다. 그렇다고 바로 새 이름을 주기엔 생판 모르는 사람이 글 속에 그 사람인 양 살아 있어서 느낌이 이상했다. 그래서 ‘그 사람’으로 적다가 끝내 포기했다. 실제 이름을 줄 수도 새 이름을 줄 수도 없어 나는 글을 시작조차 하지 못한다.


너무 사랑하는 사람 앞에서는 똑똑해질 수가 없었다. 많은 만남에서 나는 내가 갖고 있는 편견과 고정관념으로 수많은 탐색의 순간을 단축시켜 왔다. 편견이 없었다면 정말 오래 걸렸을 일을 편견이 있었기에 어떤 사람의 몇 가지 말과 행동과 분위기같은 것으로 이런 사람이구나, 파악했다. 살면서 만나온 사람의 수만큼 많은 편견을 갖고 있다. 그런데 그 사람에 대해서는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모든 판단이 불가했다. 그래서 그 사람에 대한 편견도 매뉴얼도 없었다. 매번이 새로운 만남같았고 매순간이 새로웠다. 단점은 싸울 때마다 어찌할 줄 몰랐다. 그리고 마지막 싸움으로 관계는 끝났다. 지금도 나는 그 사람이 어떤 사람인지 모른다. 어떤 사람이야?라는 질문을 받으면 한 문장으로 대답할 수 없을 만큼이다. 존재를 한 문장으로도 줄일 수 없는데 한두글자 이름으로 줄이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한 일인 것 같다.


나는 연애가 끝날 때마다 내가 이 연애를 하는 동안 얼마나 성장했나를 강박적으로 찾는다. 이번에도 그랬다. 연애가 하나 끝나면서 내 삶의 한 시절이 끝나고, 내 인생의 책 한권이 마무리되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리고 그동안의 성장 정도를 묻고 답하는 것은 책 하나를 마무리하는 일종의 저자후기다. 따뜻한 물로 샤워를 하는 아침마다, 침대에 누워 흰 천장을 바라보는 밤마다, 조용한 카페에 막 도착해서 음료를 받아든 고요한 순간에 나는 그 사람을 생각한다. 그순간 서글퍼지며 저자후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지나간 시간들을 훑는다. 따뜻하고 좋은 기억들 사이에서 성장의 흔적을 찾아낸다. 그러다 눈물이 난다.


작년의 나와 올해의 나를 나란히 놓고 바라보면 다르다. 작년의 나 자리에 2년 전의 나를 놓으면 더 많이 다르고, 연애를 시작한 3년 전의 나를 놓으면 정말 많이 다르다. 어떤 순간들은 인생에서 두번 다시 같지 않을 좋은 순간들이 되었다. 상처가 곪지 않도록 그자리에 눈물과 웃음으로 약을 바르는 법을 배웠다. 중학생 때 학교 축제에 드레스를 입고 나가 플루트를 분 적이 있다. 오랜 시간동안 창피한 상처로 곪아가는 기억이었다. 그와 어느 여름밤 창문이 열린 술집에서 맥주를 마시며 말하고 울고 웃었다. 그 후로 다른 사람에게도 말하며 같이 웃을 수 있게 됐다. 다정함이 성실할 수 있다는걸 보았다. 글을 쓰고 싶은 마음을 행동으로 옮기게 되었다. 요리한 음식을 나눠먹는 즐거움을 알았고, 하고싶은 일을 조금씩 꾸준히 하는 버릇이 생겼다. 함께 책읽고 이야기하는 것이 좋았고 삶이 조금 좋아졌다. 함께 한 시간이 삶 자체여서, 이 모든 변화는 그의 덕택이기도, 우리가 함께 만든 것이기도, 나의 노력이기도 하다.


최근 마무리된 이 책의 제목은 짓지 못하겠다. 등장인물의 이름도 못 짓는 사람에겐 당연한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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