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산층의 삶
- lkh950203
- 2022년 3월 16일
- 4분 분량
최종 수정일: 2022년 3월 17일
나는 중산층의 삶을 욕망한다. 중산층이 뭔지 자세히는 모른다. 그건 다른 사람들도 마찬가지인 것 같다. 너무 궁금해서 언젠가 인터넷에 검색을 해 봤다. 어느 신문기사에서 중산층에 대해 '대략적인' 기준을 표로 만들어 정리한 것을 찾았다. 그걸 쓴 기자도 100% 확신은 없는 것 같았다. 아무튼 내게 중산층의 삶이란, 브랜드 아파트에 4인 가족으로 살면서 백화점 식품관으로 장을 보러 가거나 그게 아니면 마켓컬리 라벤더 정도의 등급을 유지하는 삶이다. 나는 자동차에 대해선 잘 모르므로 차는 은색 혹은 검은색 세단이면 되겠다. 3인 가족도 나쁘지 않다. 휴일엔 캠핑을 가거나 뭔가 매번 색다른 취미들을 탐색해 가며 시간을 보내고, 가끔 클래식 공연을 보러 예술의전당엘 가고, 종종 공연 티켓 초대권을 선물받는 사람들이다. 특별한 날엔 몇 주 전 예약해 둔 (그리고 예약을 해야 갈 수 있는) 식당에서 양은 적고 비싼 음식과 그에 어울리는 와인을 마시는 사람들이다. 이렇게 디테일하게, 상당히 오랜 시간 상상해 온 내가 좀 부끄럽기는 하지만 나는 저런 삶을 상상하면 두근거리면서 마음이 부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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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미 이루어진 것을 욕망하진 않으니까 욕망이 아주 많다는 점에서 나는 이루어야 할게 많이 남았다. 그중 하나가 집이다. 내가 기억하는 최초의 우리집은 단독주택의 1층이었다. 2층에는 집주인 가족이 살았는데, 그곳에 올라가면 나무들이 나를 감쌌다. 바닥도 벽도 천장도 나무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20년이 훨씬 넘어 서울에 살면서 나는 그와 비슷한 근사한 주택을 여럿 보았다. 몇십 년 혹은 몇백 년후의 내 삶을 미리 살고 있는 사람들이라고 생각했다. 그 집 이후로는 쭉 아파트에서 살았다. 경기도의 대단지 아파트촌에서 여러 아파트를 돌아다니며 살았다. 삶의 풍경은 많이 달라졌다. 아파트 단지의 분위기가 익숙해졌다. 아파트 주위로 환한 상가 건물이 늘어선 것이 당연했고, 아파트 단지 안에 산책로가 있는 것이 당연했으며 주차장이 있는 것도 당연했다. 이 모든 것은 더 이상 아파트에 살지 않게 된 지금에서 깨달은 것들이다. 예전에는 집을 말하면 아파트의 풍경이 떠올랐다. 시골에서 시작해 수도권 변두리에서, 다시 수도권 제법 한가운데로 집의 모양과 위치를 바꿔온 부모가 이것을 그냥 우연히 이루지 않았다는 걸 이제 안다.
지금은 부모로부터 독립해 빌라에서 살고있다. 독립 후 처음 집도 빌라, 두 번째 집도 빌라다. 오래된 빌라의 적갈색 몰딩을, 요즘은 잘 만들지 않는 나무 문을, 잘 나가는 옛 시절에 만든 장식적인 화장실을 나는 사랑한다. 오래된 건물의 생김새와 집 구조를, 갈색 벽돌과 청록색으로 도색하고 금테를 두른 뒤 금색 손잡이를 단 옛날 신발장과 옛 물건의 흔적들을 사랑한다. 나는 지금 살고 있는 오래된 빌라를 사랑하지만,
동시에 내가 직접 방역업체를 불러서 집을 소독하지 않아도 누군가 해준다면 너무 좋겠고,
주변에 걸을 만한 공원이나 녹지가 있으면 좋겠고,
정말 불편한 콘센트 배치에 놀라지 않기를 바란다.
지나간 사람들이 닦지 않아 닦을 수 없게 되어 버린 창문을 안 보고 싶고,
바닥엔 장판 대신 마루나, 안된다면 데코타일이라도 깔고 싶다.
작년 봄에, 결혼한 지 몇 달 된 친구네 집들이를 했다. 친구와 친구의 남편은 둘 다 서울에 직장이 있지만 경기도에 집을 얻었다. 아파트였다. 나는 집들이를 가기 위해 버스를 탔고 1시간이 조금 넘는 시간 동안 창밖으로 수많은 풍경을 흘려 보냈다. 도착해 갈 때였다. 중국에서 온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을 보았다. 곧바로 버스는 개천 위에 놓인 다리를 지났다. 개천가를 산책하는 사람들을 보았고 곧이어 아파트 단지가 모인 동네가 나타났다. 다리 하나를 두고 전혀 다른 두 풍경이 펼쳐지는 것이 낯설었다. 아파트 단지를 보자 아파트에서 자라날 때 우리 가족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내가 속한 곳,은 당연히 아니고 속할 곳이라거나 속하고 싶은 곳은 아파트 단지는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은행이 돕는다 하더라도 나 혼자선 못 들어갈 아파트, 어차피 원하는 것도 아니라는 걸 일찍 깨달아서 다행이긴 했지만 동시에 엷은 실패감이랄까 낙오감 같은 것도 조금 느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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처음 여자 친구가 생겼을 때를 기억한다. 그 당시 만나던 애인을 사랑했지만 길거리나 미디어에서 이성 커플을 보거나 4인 핵가족을 볼 때마다 상황이 비현실적이고 어색하게 다가왔다. 내가 동성애인을 만나고 있는 상황이. 한번도 상상해 본 적도 없는 일이었는데, 분명 나도 남자를 만나 ‘평범한’ 연애를 할 수 있는데, 나는 왜 여자를 만나고 있는 걸까? 스스로 나의 연애에 만족하는가와 다른, 채워지지 않은 욕망의 존재를 감지했다.
지금은 그렇지 않다. 나의 어색함은 한층 더 진화했다. 이제는 길에서 동성커플을 보면 어색하고, 이성 커플을 보면 신기하다. 사람들은 왜 서로를 만날까? 연애는 왜 할까? 풀 수 없는 의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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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초등학교 교사이다. 어디에 가서 내 직업을 먼저 말하지 않는다. 1등 신붓감이네요,라는 농담을 듣기 싫어서다. 여기에 아이들을 좋아할 거라는 넘겨 짚음, 방학이 있어 좋으시겠네요, 칼퇴해서 좋겠어요, 세상에 선생 자격이 없는 선생들이 너무 많아요,등등이 더해질까 두렵다. 물론 좋은 마음에서 한 말이란걸 알지만 일과 삶의 균형이 잘 맞고(다들 과로하고 있다), 방학이라는 게 있고(휴가를 맘껏 쓰기 어려운데), 연금이 걱정없이 나오고(노후 걱정이 모두에게 심각한 고민거리인데), 어린이를 상대하는(애들 다루기는 어른 상대하는 것보다 나을 것 같아서) 여러 장점(?)을 나만 누리는 듯해 불편하다. 나도 그것을 알고, 어느 부분은 그래서 나의 직업이 좋다.
나는 내 직업이 어린이가 사회에 적응하고 스스로 성장할 수 있도록 돕는 직업이라고 마음 깊이 생각한다. 동시에 내가 사회의 규칙을 안내하고 어린이가 규칙들을 자연스럽게 몸과 마음에 새기도록 교묘하게 조종하는 사람이라고 느낀다. 어린이의 성장을 돕기는 하지만 성장 코스가 정해진 사회에서 진정으로 ‘돕는’ 사람일 수 있을까? 그래서 교사로 남고 싶은 마음과 그만두고 싶은 마음이 늘 부딪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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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무엇을 원할 때, 진짜 나의 욕망인지 아니면 사회가 제시하는 욕망인지 혼란스럽고 헷갈린다. 힘 닿는 만큼 의심한 뒤에 어느 한쪽으로 깔끔하게 규정하고 싶은데, 욕망을 둘로 쪼개어 내가 가진 욕망이 어느 쪽인지를 가려내는 것이 가능한지는 모르겠다. 진짜 나의 욕망이라 한들 그것 역시 어딘가에서 보고 듣고 배운 욕망 아닌가? 한편으로는 나의 욕망이 어느 정도 남의 욕망을 닮을 수밖에 없다 해도, 나는 내가 진짜 원하는 것을 알아내고 싶다. 20년 넘게 살아오면서 당연하다고 믿었던 욕망들이 사실 나에게 중요하지 않다는 걸 깨달아 가는 중이기 때문이다. 욕망이 아주 적어졌을 때, 그때에도 중산층의 삶을 원할지 궁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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